풍경과 상처/속수무책
생활에게
latespring
2017. 11. 17. 14:47
생활에게
일하러 나가면서 절반의 나를 집에 놔두고 간다
집에 있으면 해악이 없으며
민첩하지 않아도 되니
그것은 다행한 일
나는 집에 있으면서 절반의 나를 내보낸다
밭에 내보내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하고
먼 데로 장가를 보내기도 한다
반죽만큼 절반을 뚝 떼어내 살다 보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없으며
그리하여 더군다나 아무것도 아니라면 좀 살 만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살아갈 힘을 구하는 것은
당신도 아니고 누구도 아니며
바람도 아니고 불안도 아닌
그저 애를 쓰는 것 뿐이어서
단지 그뿐이어서 무릎 삭는 줄도 모르는 건 아닌가
이러니 정작 내가 사는 일은 쥐나 쫓는 일이 아닌가 한다
절반으로 나눠 살기 어려울 때는
내가 하나가 아니라 차라리 둘이어서
하나를 구석지로 몰고 몰아
잔인하게 붙잡을 수도 있을 터이니
- 이병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