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판결문(일부)
사건개요
○ 청구인은 산부인과 의사로서, 2013. 11. 1.경부터 2015. 7. 3.경까지 69회에 걸쳐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였다는 공소사실(업무상승낙낙태) 등으로 기소되었다.
○ 청구인은 제1심 재판 계속 중,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2017. 2. 8.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심판대상
○ 이 사건 심판대상은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 조 제1항(이하 ‘자기낙태죄 조항’이라 한다),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이하 ‘의사낙태죄 조항’이라 한다)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심판대상조항]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에 처한다.
[관련조항]
모자보건법(2009. 1. 7. 법률 제9333호로 개정된 것)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 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 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 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모자보건법 시행령(2009. 7. 7. 대통령령 제21618호로 개정된 것) 제15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법 제14조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 은 임신 24주일 이내인 사람만 할 수 있다.
결정주문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은 모두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위 조항들은 2020.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계속 적용된다.
재판관 유남석,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 이선애, 재판관 이영진의 헌법불합치 의견
1.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판단
가. 제한되는 기본권
○ 헌법 제10조 제1문이 보호하는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일반적 인격권이 보장 되고, 여기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파생된다.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생활영역에서 인격의 발현과 삶의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리다. 자기결정권에 는 여성이 그의 존엄한 인격권을 바탕으로 하여 자율적으로 자신의 생활영역 을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고, 여기에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신 체를 임신상태로 유지하여 출산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가 포함되어 있다.
○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임신기간 전 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 을 부과하도록 정함으로써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으 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나.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
(1) 입법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
○ 태아는 비록 그 생명의 유지를 위하여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국가는 태아의 생명을 보호 할 의무가 있다.
○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 하고, 낙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이러 한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이다.
(2) 침해의 최소성 및 법익의 균형성
○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 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 이다.
○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함에 있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 라 그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산부인과 학계 에 의하면 현 시점에서 최선의 의료기술과 의료 인력이 뒷받침될 경우 태아는 마지막 생리기간의 첫날부터 기산하여 22주(이하 “임신 22주”라 한다) 내외부 터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 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할 때 훨씬 인간 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 한편 자기결정권이 보장되려면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하여 전인적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 다. 즉, 여성이 임신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상황 및 그 변경가능 여부를 파악하며, 국가의 임신·출산·육아 지원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주변의 상담과 조언을 얻어 숙고한 끝에, 만약 낙태하겠다고 결정한 경우 낙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거쳐 실제로 수술을 완료하 기까지 필요한 기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이하 착상 시부터 이 시기까지를 ‘결정가능기간’이라 한다)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 임신한 여성의 안위는 태아의 안위와 깊은 관계가 있고,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임신한 여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한 다는 언명은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사회적 보호를 포함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고 낙태를 감소시킬 수 있는 사회적·제 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등 사전적․사후적 조치를 종합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태 아의 생명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 낙태갈등 상황에서 형벌의 위하가 임신한 여성의 임신종결 여부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사정과 실제로 형사처벌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는 현실 에 비추어 보면, 자기낙태죄 조항이 낙태갈등 상황에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실 효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지 않으면 모든 낙태가 전면적·일률적 으로 범죄행위로 규율됨으로 인하여 낙태에 관한 상담이나 교육이 불가능하고, 낙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될 수 없다. 낙태 수술과정에서 의료 사고나 후유증 등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기가 어려우며, 비싼 수술비를 감 당하여야 하므로 미성년자나 저소득층 여성들이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자기낙태죄 조항은 헤어진 상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 단, 가사·민사 분쟁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 모자보건법상의 정당화사유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갈등 상황이 전혀 포섭되지 않는다. 예컨대,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 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 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 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 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 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 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 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은 임신 유지로 인한 신체적·심리적 부 담, 출산과정에 수반되는 신체적 고통·위험을 감내하도록 강제당할 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고통까지도 겪을 것을 강제당하 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기 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이유로 낙태갈등 상황을 겪 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제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하고 있다.
○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은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정도 를 넘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있어 침해의 최소성을 갖추지 못하였고,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에 대하여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법익균형성의 원칙도 위반하였다고 할 것이므로,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규정이다.
2.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한 판단
○ 자기낙태죄 조항은 모자보건법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결정가능 기간 중에 다양하고 광범위한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하여 낙태갈등 상황을 겪고 있는 경우까지도 예외 없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 및 출산을 강 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한다는 점에서 위헌이므로, 동일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사낙태죄 조항도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고 보아야 한다.
3. 소결
○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낙태를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것 자체가 모든 경우에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 죄 조항에 대하여 각각 단순위헌 결정을 할 경우,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 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이 생기 게 된다.
○ 입법자는 위 조항들의 위헌적 상태를 제거하기 위해 낙태의 형사처벌에 대한 규율을 형성함에 있어서, 결정가능기간을 어떻게 정하고 결정가능기간의 종기 를 언제까지로 할 것인지,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실 현을 최적화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결정가능기간 중 일정한 시기까 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확인을 요구하지 않을 것인지 여부까지를 포 함하여 결정가능기간과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추가할 것인지 여 부 등에 관하여 앞서 우리 재판소가 설시한 한계 내에서 입법재량을 가진다.
○ 따라서 자기낙태죄 조항과 의사낙태죄 조항에 대하여 단순위헌 결정을 하는 대 신 각각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되, 다만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이루어질 때 까지 계속적용을 명하는 것이 타당하다. 입법자는 늦어도 2020. 12. 31.까지는 개선입법을 이행하여야 하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위 조항 들은 2021. 1. 1.부터 효력을 상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