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2019. 8. 1.
"이런 경우, 히다카 씨가 그날 어디에 전화를 걸었는지 조사해보면 간단하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조사했어?"
"네, 조사했습니다." 가가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래서, 결과는?"
"6시 13분에 여기 선생님 댁으로 발신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음, 그렇겠지, 실제로 전화가 왔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 나는 두려움이 한층 더 커져가고 있었다. 발신기록을 확인하고서도 가가 형사가 의심을 버리지 않았다는 건 거기에 걸린 트릭을 알아차렸음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97쪽)
2019. 8. 2.
"신인상처럼 귀찮고 번거로운 짓은 안 하는 게 좋아. 게다가 그건 운이라는 요소가 상당히 많거든. 예심을 맡은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아서 좋은 작품인데도 아예 예심 단계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아, 그런 얘기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어."
"그렇지? 역시 편집자하고 직접 맞붙는 게 지름길이야." 히다카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습니다.
소설이 완성되면 곧바로 연락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날은 그와 헤어졌습니다.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고 보니 집필에 쏟아붓는 열의가 크게 달라졌습니다. 질질 끌며 1년이 넘도록 반밖에 나가지 못했는데 히다카를 만난 날부터 겨우 한 달 만에 소설이 완성되었던 것입니다. 원고용지로 3백 매가 넘는 중편이었습니다. (188쪽)
꿈이 실현되는 날을 빼앗겨버리고 보니 하츠미 씨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은 전보다 더욱 강해졌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만났어도 헤어지자마자 금세 또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집으로 찾아주는 횟수는 어느 날부터인가 문득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듣고 나는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히다카가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차린 것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녀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말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헤어지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말입니다.
"우리 둘의 관계를 알게 되면 남편은 틀림없이 복수를 할 거에요. 당신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나는 괜찮아요, 하지만......"
하지만 그녀를 더 이상 고통 속에 남겨둘 수는 없었습니다. 히다카의 성격을 생각하면 깨끗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녀와 헤어진다는 건,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며칠이나 고민을 했을까요. 나는 교사로서의 일도 내팽개치고 타개책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미 다 아시겠지요. 아니, 가가 형사는 진즉부터 짐작하고 있었으니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히다카를 죽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2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