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2024. 3. 19. 숟가락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먹기 위해 드나드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숟가락을 향해 나는 종종 묻는다. 이 숟가락은 몇 살일까.
숟가락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술을 스쳐 내 앞에 놓이게 된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숟가락으로 따순 국물을 떠먹었을까.
2024. 3. 21. 거울
봄밤이다. 먼 산 능선에 홍반처럼 번져 있던 산벚꽃들은 이미 스스로의 열기 속으로 사라졌다. 꽃이 자기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꽃은 진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그러할 것이다.
2024. 3. 24. 의자
의자는 직립의 기술을 습득한 인간이 최초의 출발지를 찾아가는 여정에 놓은 사물이다.
2024. 3. 27. 반지
여리디여린 꽃대에 자기 존재 전부로 다만 아름다워진 그이들이 귀해서, 너무 귀해서 못 꺾는다. 그런데 말이다. 풀꽃 무리에 코를 박고 눈물 많아진 내 나이는 철모르던 어린 시절 아름다운 것들을 서슴없이 책갈피에 갈무리하던 그때보다 순수한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까이 가고 싶고 가서 만지고 싶고 냄새 맡고 싶고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반응이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마음이 잔인해서 꽃을 꺾는 것이 아니다. 그 나이엔 아름다움에 쉽게 동화되고 쉽게 이끌린다. 단순하고 이기적이면서 천진하다.
상처가 많아질수록, 아름다운 것들이 쉽게 유린되는 것을 너무 많이 경험한 나이가 될수록 꽃을 꺾지 못한다. 꽃을 만지는 행위 하나에서도 윤리적 자아가 발동하게 된다는 것은 혹여 세계와 나의 타락의 방증은 아닐는지.
2024. 3. 28. 촛불
어둠이 깊어진다. 어둠은 깊어질수록 그 속에 많은 숨구멍을 지닌다.
2024. 4. 3. 못
시시로 무슨 소용이 닿아 못들을 박았을 것인데 이제 막 살림을 시작한 나는 방안의 그 많은 못들이 감당했을 소용들을 얼른 점칠 수가 없었다.
그 황홀한 통증의 뿌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자기 무게의 수십 배가 넘는 사물들을 지탱한다. 못들은 힘이 세다.
2024. 4. 25. 바늘
바늘은 말하기 전에 몸으로 실천한다.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이끄는 대로 길을 정한다. 그리고 온몸으로 그 길을 간다. 예리한 바늘 끝과 다소 뭉툭한 바늘의 귀, 극도로 심플한 바늘의 몸은 이 두 극점으로 자신의 외연과 내면을 소통시킨다. 바늘은 자기의 몸에 실을 꿰고 온몸으로 옷감ㅡ현실을 관통한다. 그리고 숨는다. 바늘은 현실에 깊숙히 관여하면서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보여지는 것들 속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지 않는다. 바늘이 자기의 몸을 빌려준 실만이 바늘이 지나간 자리를 증거할 뿐이다.
2024. 4. 26. 소라껍데기
이토록 우아하고 예민한 나선형의 뿔을 돋을새김 해놓은 소라의 몸은 과감하다. 아름다운 것은 드러냄과 숨김의 욕망을 흔히 함께 지닌다. 아름다운 부분이 완전하게 노출되어 있는 몸은 어딘지 불안하지만, 소라껍데기 나선의 뿔은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다. 내부의 뿔 때문이다. 드러난 뿔 속의 뿔, 소라껍데기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뿔은 외부의 그것만큼이나 아름다울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만져볼 수 없고 들여다볼 수 없음으로 오히려 안점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