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상처/속수무책

코스모스가 회복을 위해 손을 터는 가을

latespring 2024. 10. 21. 21:40

 

  내가 가을을 봄이라 부른 건요

  실수가 아니에요

  봄 같아요 봄 같아서

 

  얼굴에 입은 거 다 벗고

  하늘에다 바라는 걸 말해봅니다

 

  하지만 하늘에다 말한 건 실수였어요

  실수를 해버렸으니

  곧 코스모스가 피겠네요

 

  코스모스는 매년 귀 밑에서 펴요

 

  귀 밑에서 만사에 휘둘려요

  한 두 송이가 아니라서

  휘둘리지 않을 만도 한데 휘둘려요

 

  어쩌겠어요

 

  먹고 살자고 뿌리에 집중하다 보니

  하늘하늘거리는 걸 텐데

  어쩌겠어요

 

  이해해요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잖아요

  귀 밑에서 스스로 진리에 도달하고

  질문도 없잖아요

 

  그 좁은 길

  무게 넘치는 곳에서

  질문이 없잖아요

 

  꺾어다 주머니에 찔러 넣어도

  내년에 다시 회복할걸요

 

  휘둘리며 사는 삶에는

  애초에 비스듬하게

  서 있는 것이 약이니까요

 

                               - 이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