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

대명사

latespring 2013. 6. 6. 01:00



  대명사, 특히 인칭대명사가 갖는 힘.


  소설에서 인칭대명사는 소설가가 만들어 낸 소설 속 사회에 존재하는 특정인물을 지칭한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 사람은 그 인칭대명사가 누구인지 똑똑히 알아 듣고 소설가가 일러 주는 대로 잘 따라간다.

  시에서 쓰이는 인칭대명사는 어떠한가. 시에서 쓰이는 '나'는 독자에게 시적화자 또는 시인으로 읽히면서도, 공감하는 순간 그 '나'를 현실세계의 자신처럼 받아들이며(단지, '나'가 없더라도), 또한 '너'는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너'로 만들어, 듣고, 공감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시는 공감에서 비롯되는 착각이다(착각의 미학이 시가 아닐까)

  비록 시에서 등장하는 '너'와, 현실세계에서 그 시를 읽으며 호명당하는 느낌을 받는 독자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마음을 말로 전하는 과정에서…… 다시 말을 마음으로 받아 들이는 과정에서, 시인이 잃어버린 감정과 독자가 잃어버린 감정이…… 서로 가감되어 마음의 결정으로 남은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니, 내가 쓰고자 한 것에 인칭대명사가 거의 없다. 그 동안 써온 것은 나의 독백이거나, 단지 홀로 세상을 겨누는 말뿐이었던가.

  앞으로 나와 너와 우리와 그대를 쉬이 내놓아야겠다. 그 공감이 착각에서 비롯될지라도 그 착각은, 위로받으며 위로하는 착각일테니, 좀 더 착각하며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