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2.19.
(237쪽)
박차돌은 취해서 돌아갔다. 캄캄한 박석고개를 넘어가면서 박차돌은 어차피 죽을 년……을 거듭 중얼거렸다.
(239쪽)
박한녀는 혼절했다. 종사관은 그날의 형문을 끝내고 박한녀를 다시 하옥시켰다. 포줄 두명이 박한녀의 팔다리를 묶고 그 사이에 몽둥이를 끼워 목도를 메어서 감옥에 던졌다.
자정 무렵에 집장사령 오호세가 감옥에 와서 옥사장을 만나서 뭐라고 귓속말을 속닥거리고 갔다.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었다. 박한녀는 그때까지 실신해 있었다. 오호세가 돌아가자 옥사장이 박한녀를 독방으로 옮겼다. 옥사장은 똥과 꿀을 섞어서 박한녀의 터진 볼기에 비벼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벌레들이 달려들어 박한녀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파먹었다. 박한녀의 몸에서 고열이 났다. 박한녀의 일생에서 가장 따뜻한 온도였다. 다음날 저녁에 박한녀는 죽었다. 벌레들이 죽은 몸뚱이 속에 들끓었다. 마흔한 살이었다.
(247쪽)
비탈밭에서 쟁기를 끌던 소가 저녁이면 외양간 쪽을 쳐다보며 길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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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문장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냥 쭉쭉 밀고 들어오는 말들이 좋다.
읽어주기와 보여주기.
2013.2.20
가운데 모셔진 십자가에서 야소는 이목이 뚜렷해서 산 사람 같았다. 못 박혀 매달려 있어도 얼굴은 평안했다. 야소는 천팔백 년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299쪽)
죽음은 바다 위에 널려 있어서 삶이 무상한 만큼 죽음은 유상했고, 그 반대로 말해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자들끼리 살아 있는 동안 붙어서 살고 번식하는 일은, 그것이 다시 무상하고 또 가혹한 죽음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지라도, 늘 그러한 일이어서 피할 수 없었다.
(306쪽)
밤부엉이가 울어서 길은 더 멀게 느껴졌다.
(330쪽)
주문모의 머리는 닷새 동안 걸려 있었다. 강 건너 마을 사람들도 나룻배로 건너와 군무효수를 구경했고 목판을 멘 아이가 가위를 치면서 엿을 팔았다.
(339쪽)
숭어는 눈꺼풀이 기름져서 파도가 때려도 눈을 뜨고 나아갈 수 있다. 숭어의 몸뚱이에는 숭어의 진행방향과 물살의 무늬와 시간이 찍혀 있다. 숭어는 민첩하고 영리하다.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서 헤엄치다가, 한 마리가 감지한 위험이 순식간에 전체로 전파된다. 숭어는 무리 속에서도 개별자의 촉각이 살아 있고, 개별자의 촉각이 집단의 촉각으로 번져 나간다. 숭어는 먹는 자리가 아니면 절대로 먹지 않고 맑은 물에서는 미끼를 물지 않는다.
(379쪽)
황사영의 머리는 대나무 삼각대에 매달려 효수되었다. 머리가 잘린 사체들은 모래밭에 흩어졌다. 아침에 거지 아이들이 형장으로 몰려왔다. 거지 아이들이 토막 난 사체에 줄을 매서 마을로 끌고 나갔다. 목이 잘린 사체는 살았을 때 누구였던지 알 수 없었다. 거지 아이들은 민가의 대문에 사체를 들이밀며 밥을 구걸했다. 집 주인들이 질겁해서 밥을 내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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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읽기를 마쳤다.
마침내 살아야 할 것들은 살아서, 살아가는 구나를 보여주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