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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말고, 노을 같은 거 어떤 날은 노을이 밤새도록  계단을 오르내리죠  그 노을에 스친 술잔은 빛나기 시작하죠   그뿐이죠   그저 그뿐인 것에 시선이 가죠  술을 삼키거나 회를 삼킬 때마다  떳다가 지는 노을에요   그의 목에 있는 노을을 건드리고 싶지만  내가 사는 곳은 동쪽이라  손댈 수 없죠   술을 마시고 마셔도 내 목에는  노을 지지 않죠  시간만 가죠   밤이 뛰어오죠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죠  노을 가까이에 다가갈 방법을 알지만  오늘은 날이 아니란 것도 알죠   그는 노을과 함께 곧 이 섬을 떠나죠  그뿐이고 그러니 오늘뿐이고  모든 것들은 원래 다 그렇죠   봄날의 꽃처럼  한철 잠깐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죠   올해는 오늘까지만 아름답다,   이렇게요                  - 이원하 2025. 3. 24.
레몬 당신의 눈 속에 가끔 달이 뜰 때도 있었다 여름은 연인의 집에 들르느라 서두르던 태양처럼 짧았다  당신이 있던 그 봄 가을 겨울,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우리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시퍼런 빛들이 무작위로 내 이마를 짓이겼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당신의 잠을 포옹하지 못했다 다만 더운 김을 뿜으며 비가 지나가고 천둥도 가끔 와서 냇물은 사랑니 나던 청춘처럼 앓았다   가난하고도 즐거워 오랫동안 마음의 피랑 같은 점심 식사를 나누던 빛 속, 누군가 그 점심에 우리의 불우한 미래를 예언했다 우린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린 그냥 우리의 가슴이에요   불우해도 우리의 식사는 언제나 가득했다 예언은 개나 물어가라지, 우리의 현재는 나비처럼 충분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곧 사라질.. 2025. 3. 18.
모지랭이 모지랭이1.모자란 삶, 혹은 달아서 쓰지 못하는 빗자루 등을 일컫는 경상도 지방의 말 2025. 3. 15.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 I. Moderato 2025. 3. 11.
아무튼, 술 첫문장     술과의 첫 만남은 요란했다. 술에는 맛도 있고 향도 있지만 소리도 있다.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술이 내는첫 소리까지도 사랑한다. (중략)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소주병을 따고 첫 잔을 따를 때 나는 소리다. 똘똘똘똘과 꼴꼴꼴꼴 사이 어디쯤에 있는, 초미니 서브 우퍼로 약간의 울림을 더한 것 같이 이 청아한 소리는 들을 때마다 마음까지 맑아진다. (33쪽) 2025. 3. 4.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Op. 48: I. 2025.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