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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영화 이야기

나의 아저씨

by latespring 2024. 1. 4.

 2018. 11. 20. / 2024. 1. 4.

 

  # 모른척 해줄게

  동훈: 사람 다 욕해. 그걸 다 일러바치면 어떡하냐? 쪽팔리게... 미안하다. 내가 다그쳐놓고... 고마워... 때려줘서... 니들은 그런거 다 말해주는게 의리일지 모르지만, 어른들은 안그래. 담부터는 그냥 모른척해줘. 내가 상처받은거 아는거 불편해. 보기 싫어.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러면 아무일도 아니야.

 

  지안: 그러면 누가 알때까지 무서울텐데... '누가 알까?', '이 사람은 언제 알게 될까?' 어쩔 땐 평생 불안한거 보다 그냥 광화문 전광판에 떠서 세상 사람들 다 알았으면 좋겠던데.

 

  동훈: 모른척 해줄께. 너에 대해서 무슨 말을 들어도 다 모른척 해줄께.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줘. 모른 척 해주겠다고...  겁나, 넌 말안해도 다 아는거 같아서.

 

  # 외력과 내력

  지안: 공짜로 안전진단도 해줘요?

 

  동훈: 그럼 한동네에 살면서 돈받냐?

 

  지안: 건축사인거 소문나면 여기저기서 다 봐달라고 할텐데...

 

  동훈: 건축사 아니고, 구조기술사. 여태 무슨회산지도 모르고.

 

  지안: 비슷한거 아닌가?

 

  동훈: 달라. 건축사는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구조기술사는 그 디자인대로 건물이 나오려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야 안전한가 계산하고 또 계산하는 사람이야. 말 그대로 구조를 짜는 사람.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쎄게 내력을 설계하는거야. 아파트는 평당 300킬로 하중을 견디게 설계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학교나 강당은 하중을 훨씬 높게 설계하고, 한층이라도 푸드코트는 사람들 앉는데랑 무거운 주방기구 놓는데랑 하중을 다르게 설계해야되고,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쎄게.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거야.

 

   지안 :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동훈: .....몰라

 

   지안: 나보고 내력이 쎄보인다면서요?

 

   동훈: 내 친구중에 정말 똑똑한 놈이 하나 있었는데. 이 동네에서 정말 큰인물 하나 나오겠다 싶었는데. 근데 그놈이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있다가 뜬금없이 머리깍고 절로 들어가버렸어. 그때 걔네 부모님도 앓아 누우시고, 정말 동네 전체가 충격이었는데... 걔가 떠나면서 한 말이 있어.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되어 보겠다고.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라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둥바둥 사는데 뭘 갖는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걸 갖는다고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가면... 못 견디고...무너지고...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진정한 내 내력이 아닌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무의식중에 그 놈 말에 동의하고 있었나보지. 그래서 이런저런 스펙 줄줄이 나열된 이력서보다 달리기 하나 써있는 이력서가 훨씬 쎄보였나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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