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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속수무책

수라

by latespring 2013. 7. 18.



  거미 새끼 하나 땅바닥에 나른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 거미 쓸려 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 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 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 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는 

무서우이 달아나 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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