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보고 늦게 잤다. 축구공은 있어야 하면서도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를 위해 끊임 없이 굴렀다. 구르던 공이 멈추고 나서, 나는 뒤척이지 않고 푹잤다.
일어나서 계란찜과 찬밥을 먹었다. 커피를 내리고, 해야할 일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으로 도망쳤다.
도서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뿌옜다. 날이 뿌옇게 보였지만, 볕을 쬐러 밖에 나갔더니 쨍한 날이다. 외벽에 붙어 있는 창들마다 먼지가 앉아서 뿌옜다. 도서관에서 읽어내는 세상과, 몸으로 겪어내는 세상의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구두굽이 바닥에 부딪쳐 또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또' 뒤에 오는 '각' 사이에는 쉼이 없었고, '또각'은 보폭의 시간만큼 뒤에 또 다른 '또각'을 당겼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나는 리듬을 남몰래 가만히 들었다.
하루를 통틀어 네 마디의 말을 내뱉었다. 도서관의 침묵과 가까워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