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공원의 산신령>
(전략) 패자부활전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줄담배를 피워가며 잡담을 했다. 노인들은 죽음을 아주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엿들으면서 메모를 했다.
- 그, 최씨 있잖아, 1*4 때 내려왔다는 사람. 요즘 안보이네.
- 그 사람 죽었대. 부산 사는 아들네 집에 가서는 죽었다는구만.
- 그래? 멀어서 문상 못 가네.
- 이 사람아, 장기판에서 무슨 문상인가?
- 아니 최씨가 누구야? 난 기억 안 나.
- 아, 거 왜 상(象) 잘 쓰는 사람 있잖아. 상으로 난데없이 옆구리 찌르는 사람 말이야. 못 당하지, 못 당해.
상 잘 쓰는 사람! 나는 이 사소한 것의 신선함에 놀랐다. 이렇게 기억되는 생애는 얼마나 가벼운가. 상은 사정 거리가 너무 길고 진로에 장애가 많아서 나는 상을 잘 부리지 못한다. 나는 초장부터 상을 상대의 졸과 바꿔놓고 끝판에 후회한다. 나중에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상 못 쓰는 사람'으로 기억될 법한데, 잘 쓰는 사람은 기억되지만 못 쓰는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다.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