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오후, 시장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보리밥과 시래기국과 동태찌개. 먹고싶던 봄동이 있길래 듬뿍 넣고 다른 나물들도 조금씩 넣고 청국장과 참기름에 밥을 비볐다. 순자씨가 왜이리 희멀건하냐고 고추장 안넣냐고 하신다. 고추장이 안땡겨서 청국장이 좋다고 대답했다. 입안에 굴러다니는 보리 몇 알을 앞니로 으깨어 먹었다. 욕심이 나서 너무 많이 먹어 버렸다. 순자씨는 통장들고 새마을금고에 갔다. 다 먹고 근처에 앉아 있던 할매에게 돈을 내고 나왔다.
모악산에 갔다. 중인리 종점까지 버스에서 졸았다. 숲은 몸을 서늘하게 뎁혔다. 내 근육들에게 산은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편백나무 사이에서 오래 쉬었고, 생강나무가 바람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다 오르지 못하고 능선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해는 산등성이를 넘어가서 발갛게 능선을 태우고 있었다. 가로등에 붉은 빛이 들어왔고,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흰 연기가 나는 굴뚝 있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겨우내 메말랐던 논마다 자박자박 물이 들어찬 풍경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