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경과 상처/영화 이야기

러브레터(1995)

by latespring 2013. 2. 22.


가을이 가득차면 겨울이구나.

겨울 막바지에 다시 본 러브레터.


러브레터를 생각하면, A winter story가 귓가에 들린다.

러브레터를 보고 있으면, 금새 입에서 입김이 나올 것 같다. 




  줄거리.

  "잘 지내시나요." 오늘도... 당신이 그립습니다.

  14년 전 차마 전하지 못한 <러브레터>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러브레터는 기억에 관한 영화다.



1.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츠키



헷갈릴 수도 있겠다. 위가 와타나베 히로코, 아래가 후지이 이츠키(이하 '후지이양')


영화는 두 여자가 주고 받는 편지를  통해 진행된다. 


한 번 보면, 혹은 처음 볼 때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나카야마 미호라는 배우가 히로코와 후지이양을 1인 2역했기 때문에. 


유년의 후지이군을 기억하는 후지이양.

성인의 후지이군을 기억하는 히로코.


왜 1인 2역일까? 나만 궁금한 건가……. 



2. 기억에 관한 연립방정식



      후지이군: 오늘 수학 진도는 어디지?

      후지이양: 방정식.

      후지이군: 무슨 방정식?

      후지이양: 연립방정식이야.


  연립방정식은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법이기도, 기억을 풀어 나가는 방법이기도 하다. 

 

  후지이군+후지이양= 기억

  후지이군+히로코   = 기억


  미지수 후지이군(후지이에 대한 기억)을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후지이양과 히로코양이 같은 미지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1인 2역이 아닐까? (물론, 히로코는 후지이군이 첫눈에 자신에게 반했다고 알았고, 그 연유가 첫사랑 후지이양과 관련되어서 그런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내용상으로 충분한 설명)

  영화에서 연립방정식은 수학 진도가 아니라 기억을 풀어나가는 방법이다.  



3. 후지이군과 러브레터



  후지이군은 같은 이름 때문에 후지이양과 함께 독서부장이 되었다. 후지이군은 읽지도 않는 책만 빌려 독서카드에 후지이 이츠키를 남겼다.

  독서카드에 남은 '후지이 이츠키'는 후지이군의 이름인가, 후지이양의 이름인가. 아마도 후지이양의 이름이 아닐까. 

  영화 제목이 러브레터인 이유는 '히로코와 후지이양'이 주고받는 편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후지이군의 독서카드'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좋아한다, 사랑한다 쓰지 않아도, 또 내용이 없이도 후지이군은 후지이양에게 러브레터를 건넬 수 있었다.



4. 후지이 이츠키



  이름이 같아서 시험지가 바뀌었다. 바뀐 시험지를 다시 바꾸기 위해 후지이양은 후지이군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어두워져서 자전거에 달려있는 전등으로 시험지를 확인한다. 후지이군이 후지이양의 시험지와 비교해가며 천.천.히. 답을 맞춰본다. 

  후지이군은 후지이양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을까.   

  예쁜 모습. 



5. 죽음과의 대면



  익숙한 장면. 


      "잘 지내시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히로코는 후지이군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같은 자리에 앉고, 죽은 자에게 편지를 보내고). 

  히로코는 후지이군의 죽음과 대면하지 못했다(후지이군의 산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산 자들은 살아서, 죽은 사람을 대면할 수 있지만, 산 사람들이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히로코는 후지이군의 죽음과 대면할 수 없다. 대신 히로코는 산을 대면하며 묻는다. "잘지내시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산 자가 죽은자의 안부를 물을 수는 없는 법이다. 내게 히로코의 외침은 후지이군을 잃고도 너무 나도 잘 살아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제는 인정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이 장면과 병원에서 깨어난 후지이양의 모습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후지이양도 묻는다 "잘지내시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누구에게 하고 있는 말일까. 

  후지이양은 아버지의 죽음과 직접 대면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잠시 꾼 꿈에서 그랬고,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잠자리가 죽어 있는 것을 보고 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는 모습에서 그랬다.  



6. 마지막 러브레터



  후지이군이 후지이양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건넨『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그 책의 독서카드. 

  마지막 러브레터.

  



'풍경과 상처 >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Pacific  (0) 2013.06.25
Reloaded  (0) 2013.06.06
One Day(2011)  (2) 2013.03.25
더 리더(2008)  (0) 2013.03.20
만추(2010)  (4) 201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