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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책 이야기

마음의 사생활

by latespring 2022. 2. 23.

      사이코패스의 본질: 극단적 자기중심성

 

사이코패스는 공식 진단명이 아니다. 진단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도 않다. 여러 연구자와 임상가가 사이코패스를 정의하는 기준이나 평가법을 나름대로 제시해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공감 능력의 결핍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같이 느끼지 못한다. 타인의 감정은 이해하지도 못하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함께 아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하다.

  그리고 정서적 분리가 있다. 사이코패스는 그 누구와도 진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사회적 정서가 결여되어 있다. 계산된 행동과 표정, 말투로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실제로 감정을 느끼지는 못한다. 자기 내면의 정서와도 분리되어 있다. 분노나 좌절, 흥분 같은 원초적 감정을 제외하고는 보통 사람이 경험하는 정서를 느끼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공포를 느끼지 못하고, 침착하고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무책임 하다. 일이 잘못되면 타인을 비난한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법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후회나 자책도 없다.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인정할 때도 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반성은 없다. 필요에 따라 거짓말도 서슴없이 한다. 속임수에 능하다.

  과도한 자신감을 보인다. 과대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모든 일에 자신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믿는다. 어떤 일을 해도, 자신은 그럴 만한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자기 목적에만 집중한다. 목표와 관련 없는 것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방해가 되는 것은 무시하거나, 가차 없이 제거해버린다. 타인은 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기생충처럼 상대를 이용한 뒤 해를 입히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폭력성이 두드러진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고 다니지는 않지만, 사이코패스는 근원적으로 폭력적이다. 폭력을 힘으로 여긴다. 좌절을 견뎌내는 역치가 낮아서, 조금만 거슬려도 공격성이 쉽게 끓어오른다. 방해가 되면 타인을 공격하고 해를 입힌다. 폭력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은밀한 방식으로 주변 사람을 학대하고 착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코패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의 경험이 제삼자가 보기에는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조직에서 유능한 관리자로 인정받아 높은 직위에 오르기도 한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리더십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 결핍이 위기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능력으로 오인된다. 과도한 자신감과 자기 목적에만 충실한 것이 강력한 추진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진다. 폭력적 성향이 강한 조직 장악력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동료와 부하를 가차 없이 희생시킨다. 잘못을 숨기고, 실적으로 속여서라도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다. 사이코패스에게는 실제로 일이 잘 진행되는 것보다,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이코패스의 속성을 단 하나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극단적 자기줌싱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앞의 여섯 가지 특성도 따지고 보면, 자기중심성이 대인관계나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예외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법을 어겨도 괜찮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나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을 수단적 존재로 인식한다. 그 사람의 가치는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주느냐에 달려 있다. 타인에게 어떤 해를 끼치든 신경 쓰지 않는다. 미안해하지도, 후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사이코패스는 자기 외에 다른 사람들은 열등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희생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마음의 사생활, 68~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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