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밝은 곳에 갇혀 살면서도
바라는 것이 많아요
빛이 나를 뒤흔들었으면 좋겠어요
주머니에 갇혀 살면
과일이 되고 싶을 거고요
소원이 이루어진 다음날 아침에는
또다른 소원을 빌 것 같죠
아픔도 거뜬히 원해요
아픔이 그리운 날엔
베개 모서리로 내가 나를 긁죠
그런데요, 최근에
난생처음 뒷모습이란 걸 봤는데요
말문이 막힐 뻔했어요
그림자라면 발목이라도 잡고
끌고 다닐 텐데 뒷모습은
잡으려 할수록 쪼개지고 있었거든요
나는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비가 겨울엔 쉬어가는 것처럼
겨울이 오기 전에
내게도 어떠한 조치가 필요해요
같이 걸을 사람은 없지만
풀밭에 나가볼까요
풀밭은 꽃을 들고 서 있지 않아도
내게 밑줄을 그어주는 곳이니까요
- 이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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