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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속수무책

나는 바다가 채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by latespring 2024. 11. 15.

 

  참다못한 편지가

  소리치기로 작정한 순간,

 

  확인했습니다

 

  두 줄짜리 글에는

  몇 달치의 말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당분간은 여전히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그렇고 그런 말들

  내가 입기엔 너무 큰 말들

  비가 그쳤는데 급하게 우산을 펼치는 말들

 

  힘을 잃은 나를 창밖의 바다가 채갑니다

  그러고는 볶습니다

  이미 열여섯 번 볶아진 적 있습니다

 

  바다가 뱉어낸 몸은 매일매일 아픕니다

  아무도 안쓰러워 안합니다

 

  아파도 도달해야만 하는 지점을 기억하는데

  나는 자꾸만 때를 미루고 있습니다

  치과나 병원이면 이렇게 미루지 않았을 겁니다

 

  차오르다 차오르다 뚜껑만 닫으면 되는데

  그게 안 됩니다

 

  손수건 한 장이 나를 안쓰러워합니다

 

  손수건 한 장은

  아슬아슬하고 별것 아닙니다

 

  이러다가는 내일도

  바다가 나를 채갈 겁니다

  자꾸 울면

  내 눈에만 보이던 게

  내 눈에만 안 보일 겁니다

 

                           - 이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