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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상처/책 이야기39

내 젊은 날의 숲 2013. 2. 25. 내 생애 속으로 들어온 온갖 허섭스레기들의 정체를 명확히 들여다보려면 돈이 다 떨어져야 한다. 그러니 돈이 떨어진다는 일은 얼마나 무서운가 지난 겨울에 산 부츠는 두어 번 신어보니까 왠지 거북해서 신발장 안에 넣어놓고 잊어버렸다. 돈이 떨어지고 나니까 내가 그 부츠와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었던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높은 굽이 박힌 부츠였다. 높은 굽은 몸을 위로 띄워서 상반신을 긴장시키고 젖가슴을 전방으로 밀어내는데, 발목을 덮은 털가죽은 위로 뜬 몸을 다시 땅 쪽으로 끌어당겨 주저앉힌다. 그 부츠에 대한 나의 거북함은 아마도 그렇게 거꾸로 작용하는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년 연말 상여금을 받아서 그 부츠를 샀다. 직장을 버리고 돈이 다 떨어지고 나니까 그 부츠와 나 사이의 허섭.. 2013. 2. 25.
리비돌로지 2012.2.21. 정신분석의 작업이 전재하는 인간은 뼈, 살, DNA의 인간이 아닌 말, 이미지, 욕망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인간은 음식물만이 아니라 말과 이미지를 먹으며 생존한다. 그리고 그렇게 섭취한 말과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진 분비물(욕망, 환상, 쾌락)과 함께 세계를 고유한 방식으로 체험한다. 마음의 병이란 바로 그 체험의 방식이 이 세계와 화해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주체의 고유한 표지들이다. (책머리에)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상식'에 힘입어 타자와 쉽게 화해할 수 있지만 자신의 삶과는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인간이 그 내면에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감당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감당하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를 분열시킬 수밖에 없다. 타자와 화해할 수 있.. 2013. 2. 21.
흑산 2013.2.19. (237쪽) 박차돌은 취해서 돌아갔다. 캄캄한 박석고개를 넘어가면서 박차돌은 어차피 죽을 년……을 거듭 중얼거렸다. (239쪽) 박한녀는 혼절했다. 종사관은 그날의 형문을 끝내고 박한녀를 다시 하옥시켰다. 포줄 두명이 박한녀의 팔다리를 묶고 그 사이에 몽둥이를 끼워 목도를 메어서 감옥에 던졌다. 자정 무렵에 집장사령 오호세가 감옥에 와서 옥사장을 만나서 뭐라고 귓속말을 속닥거리고 갔다.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었다. 박한녀는 그때까지 실신해 있었다. 오호세가 돌아가자 옥사장이 박한녀를 독방으로 옮겼다. 옥사장은 똥과 꿀을 섞어서 박한녀의 터진 볼기에 비벼서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벌레들이 달려들어 박한녀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파먹었다. 박한녀의 몸에서 고열이 났다. 박한녀의 일생에서 .. 2013.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