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2.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버린다. 더 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할 자리가 비어 있다. 왕대는 8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 눈이 내리듯이 흰 꽃이 핀다. 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는 모조리 죽는다. 꽃 속으로 모든 힘이 다 들어가서 대나무는 더 살 수가 없다. 대꽃은 흉흉하다. 담양의 노인들은 "대꽃이 피면 전쟁이 난다"고 말한다. 대나무숲은 삶의 모든 국면을 끌어안고서도, 그 성질은 차고 단단하다. 미쳐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의 번뇌를 죽순이 다스린다고 옛 의학 서적에는 적혀있다. 그 임상효과가 어찌되었건 간에, 대숲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만하다. 대나무숲의 배후는 복합적이다. 무기와 악기, 싸움과 안식이 모두 이 숲 속에 있다. 담양 들판에서는 이 숲이 사람의 마을들을 품고 있다.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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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면 풍경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어 봐야겠다. 풍경들의 속사정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2013. 5. 27.
詩는 인공의 낙원이고 숲은 자연의 낙원이고 청학동은 관념의 낙원이지만, 한 모금의 차는 그 모든 낙원을 합친 낙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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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하고 싶은 날이었다. 결국 찾은 차는 초저녁의 곡차. 숙취처럼 적는다, 차 마시고 싶다.
2013. 6. 5.
봄은 늘 거기에 머물러 있는데, 다만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
숯불에 갈비 구워먹는 '가든'과 낮이고 밤이고 러브하는 '파크'가 온 국토의 산자수명한 명승 처처에 창궐하였다. 요즘에는 산봉우리마다, 툭 터진 들판마다, 마을 어귀마다 이동통신회사의 기지국 안테나들이 들어섰다. 패사디나 우주선 발사기지의 축소 모형처럼 생겼다.
이제 가든과 파크와 기지국은 이 국토의 가장 압도적인 풍경이다. 어느 마을, 어느 골짜기, 어느 국도 연변에서나 이 3자는 단연코 우뚝하고 단연코 두드러진다. 먹고, 마시고, 러브하고, 전화통에 대고 수다 떠는 풍경인 것이다. 하기야 전화통이 있어야 불러모아서 먹을 수도 있고, 불러내서 러브도 할 수 있을 테고, 또 러브 전후에는 잘 먹어두는 것이 좋을 테니까 이 3자는 공존공영 관계다. 속세의 길을 저어가는 자전거는 이 누린내 나는 인간의 풍경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피해갈 뿐이다.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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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반쯤 읽은 이 책을 헌책으로 사버렸다. 예전에 남겨 두고 온 책을 이제사 다시 사버리다니. 소유욕이거나, 거듭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판단이거나, 혹은 둘 다.
2013. 6. 9.
엄 노인은 사람이 죽어서 산으로 가는 이 마지막 사업을 '입산(入山)'이라고 말했다. 그의 '입산'이라는 말 속에서, 산은 삶이 다하는 자리에서 펼쳐지는 평화의 깊이로 느껴졌고, 그래서 위로 받아야할 쪽은 상여 속에 누워서 입산하는 죽은 자가 아니라 빈 상여를 메고 하산하는 산 자들일 것이다. 엄 노인의 레퍼토리는 여러 가지다. 젊어서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비통하고 구슬픈 노래를 불렀고, 오래 살아서 아늑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고요하게 멀리 퍼지는 노래를 부른다. 상여가 비탈을 올라가거나 개울을 건너갈 때는 두 박자로 부르고, 논둑길을 따라 들을 건너갈 때는 길게 늘어지는 박자로 부른다. 고생을 너무 많이 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그의 고생을 특별히 슬퍼하는 가사를 만들어서 부른다. 소리를 한번 들려달라고 하자 그는 거절했다. "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가 아니면 하지 않는 게 좋다"라고 그는 말했다. (2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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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