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좀 달라지기를. 아무리 애를 써도 변하지 않으니까 무기력해져. 책들이라도 누가 다 훔쳐가 도서관에조차 책이 단 한권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마저 있어. 학교가 폐쇄되어 학교에 가고 싶어도갈 수 없기라도 햇으면. 똑같아. 등장인물만 바뀌며 시간이 흘러가는 느낌이야.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고 쫓기고 반항하고 또 쫓기고…… 서로 벽을 보며 외롭다고 몸부림쳐. 돌아앉으면 될 텐데 벽을 본 채로 말이야. 이런 시간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면 암담해. 지난봄에도 똑같이 이러고 있었으니까. (108쪽)
그가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단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이는,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라고 말했지만 나는 단이와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단이와는 별말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을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몇 시간씩이나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읽고 단이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면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일도 걷는 일도 우리에겐 자연스러웠다. 한 가지를 말하면 열 가지를 짐작하고 알아들었다. 단시일 내에 생긴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같은 태생지에서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성장하는 동안에 쌓인 것들. (118쪽)
―우리 엄마는 나에게 누군가 미워지면 그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라고 했어. 하루를 보내고 자는 모습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고. 자는 모습을 보면 누구도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나는 화가 나거나 힘겨우면 일단 한숨 자는걸. 자고 나면 좀 누그러져 있지 않아? 사람은 자면서 새로 태어난다고 생각해봐. (195쪽)
―――
신경숙의 문장은 읽기에 피곤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그 소설에서 그랬나보다. 술술 풀리는 문장이 술술 읽혀, 책장 넘어가는 재미가 있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윤이 몇 시간 동안 거리를 걸을 때, 나도 걷고 싶었다. 편한 신을 신고, 어디로든. 오래 걸어본지 오래된 것 같다.
'풍경과 상처 >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0) | 2014.11.11 |
---|---|
희랍어 시간 (0) | 2013.12.24 |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0) | 2013.07.10 |
태엽감는새2 (1) | 2013.06.17 |
자전거 여행 (0) | 2013.06.09 |